제가 생각하는 설교의 두 가지 역설이 있습니다. 첫째는 설교는 하거나 듣는 것만으로 마치 그 말씀을 살아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데, 설교가 탁월할수록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명설교, 기억에 남는 설교일수록 해당 본문을 대할 때마다 다른 해석과 묵상의 여지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너무 좋았던 설교의 본문은 다시 말씀을 읽을 때, 새로운 통찰이 들어갈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물론 탁월한 설교자는 아니지만, 제가 설교를 하거나 성도님과 말씀을 나눌 때마다 드는 고민의 지점도 사실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전하는 말씀이 혹시 성도님들이 직접 말씀을 읽고 붙들고 씨름하는 기회를 빼앗는 것은 아닐까?” “더 많이 말하기보다 덜 전하고 직접 말씀 앞에 설 기회를 더 많이 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하고 자주 생각합니다. 그래서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 오늘 말을 너무 많이 했구나”하고 혼잣말을 자주 내뱉습니다. 단순히 말을 많이 했고 그 가운데 실수가 있었기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성도님 사이에 내가 너무 섣불리 개입했고, 적극적으로 개입한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입니다. 될 수 있으면 말을 많이 아끼고, 덜 개입하고, 덜 설명하고(사실 제가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성도님들이 직접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가장 좋은 설교자의 본이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지서를 읽으면 처음에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어느 순간 선지자는 사라지고,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설교자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듣는 자와 직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어떤 설교를 소망하는가?’ 제가 바라는 설교는 본문 가운데, 말씀 가운데 성도님들이 자신의 삶이 들어갈 공간을 되도록 많이 만드는 설교입니다. 어떻게 표현한다면 설교가 탁월하지 않음으로, 또 제가 말을 더 적게 함으로 성도님들이 직접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며 말씀 안에 자신의 삶을 펼칠 자리를 많이 만들게 하는 것이 사실은 제가 바라고 꿈꾸는 설교입니다.

오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설교자인 저나, 베델의 성도님들이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 하심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 안에서 우리의 삶의 자리를 찾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The Ideal Sermon

Rev. Abel Kang

Let us think about preaching for a moment. There are two paradoxes to consider. One, just because we sit in a pew and listen to a sermon, that does not make it ours. The application is not necessarily autonomous. This phenomenon is heightened as the quality of the sermon improves. Secondly, the more exceptional the sermon is, it makes it more difficult for the listeners to find the alternate interpretations of the text. I often ask, “By preaching on this topic, what if I am taking away the opportunities that the congregants might need to wrestle on their own?” “Wouldn’t it be better to speak less and give more space?”

Sometimes on the way home, I say to myself, “Oh no, I spoke too much.” I say so not because of the amount of what I said, but because I might have intervened when I should not have. Perhaps, it would be better for me to speak less, to intervene less, to explain less, and let the people face God themselves to wrestle with him directly.

I often heard that the Old Testament prophets are the best preachers. In the Prophets, the prophets speak on behalf of God, and yet, they disappear in between the lines, and only the Word of God remains. That is the ideal sermon.

I ask myself, “What do I desire in a sermon?” Personally, the ideal sermon is the one that converges the text with the listeners’ lives. I hope for less of me but more of the Word to directly interact with you: the listeners.

Today, I approach the pulpit with much fear and trembling. As we attend to the Word of God, I pray that we will heed the Word and find its fruition in our l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