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미국에 이민 온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때가 1988년이었습 니다. 그때부터 저의 부모님은 제가 한국에 갈 때마다 부탁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친할머니는 제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지만, 외할머니는 살 아 계셨기에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라는 것입니다. 올해가 마지막일 수 있으니 꼭 찾아뵙고 인사 드리라는 부모님의 부탁에 저는 한국에 갈 때 마다 외할머니께 인사드리기를 지난 30년 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작년 에 외할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외할머니의 연세는 103세 였습니다. 올해는 104세가 되셨고 지금도 저를 보시면 미국에서 큰 교 회 목회한다고 안쓰럽다고 늘 걱정해 주십니다. 치매 증세가 약간 있으 시지만, 아직도 정정하시고 식사도 잘하십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마지 막(?) 안부를 전하려 찾아뵙는 동안, 외할머니는 저의 아버지를 포함하 여 사위 셋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셨습니다. 자식을 앞세우신 것을 보 면 장수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한편 내 어 머니의 어머니이시니 더 오래 사셔서 어머니의 기댈 언덕으로 계셨으 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부모님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아버지는 성가대 지휘자로, 어머니는 반주자로 평생 교회를 섬기셨던 모습입니다. 그리 고 크리스마스 행사 때마다 성가대 칸타타, 캐롤링 및 연극 등으로 연말 연시를 늘 바쁘게 보냈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대머리이셨 던 아버지가 미국에 이민 오실 때 김포공항에서 가발을 쓰고 배웅하시 는 목사님과 교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셨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 이 납니다. 미국에 가서 새로운 각오로 살겠다면서 가발 쓴 이유를 밝히 시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학교에서 음악만 가르치셨던 아버지가 미국에 와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시며 어머니와 함께 고생하셨던 모습은 제가 공부하면서 결코 한눈팔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미국에 오셔서 시간당 수당을 받는 노동부터 아이스 크림 가게, 미니마켓 그리고 세탁소까지, 몸이 닳도록 수고하시며 저의 대학과 신학교 공부를 시키셨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뛰어든 목회는 부 모님을 조금도 도와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생신, 명절 등에 찾아 뵐 수도 없는 불효막심한, 내놓은 자식으로 살았습니다. 새벽 기도 때마다 마지막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 제가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 도록 도와주세요.”였습니다. 내년은 좀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 한 해를 넘기며, 외할머니도 아직 살아 계시니 아버지께 효 도할 기회가 있겠지 하다가 그만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기회가 늘 있 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살아 계신 부모님을 찾아 뵙기를 권합니다.


Mother’s Mother

Rev. Bryan Kim

The first time I visited Korea after I immigrated to US was 1988. Since then, whenever I visited Korea, my parents had a request. My paternal grandmother died when I was in Junior High school, but my maternal grandmother was still alive. They asked me to go and visit her. Not knowing when would be the last time I would see her, as my parent’s requested, I visited her each time I went to Korea for the past 30 years. When I visited her nursing home last year, she was 103 years old. She turned 104 this year and she still asks how I am doing with concern over leading a large church in America. She has a slight dementia but she eats well and very healthy. In the last 30 years I visited her, each year thinking it was for the last time(?), she has sent 3 sons in law to heaven including my father. Longevity may not always be good, having sent her children ahead of her. But on the flip side, she is my mother’s mother, and I would like her to live long to remain a stronghold for my mother to lean on.

When I think of my parents, the first thing that comes to my mind is how they served church all their lives, my father as a choir conductor and my mother as an accompanist. I will never forget how busy we were at Christmas and with end of the year events like Cantata, caroling, and musicals. I still laugh remembering about the day when we left Korea. My father, who was balding, wore a wig to the Kimpo Airport and surprised everyone and pastor who came to see us off. Seeing my father, who taught music in Korea, and my mother working so hard at ice cream store was the reason I needed to stay focused in school. He was much younger than I am right now when he came to the States, and began working as an hourly laborer, and at ice cream shop, mini market, and dry cleaners to send me to college and seminary. When I began ministry, I was in no position to support them. I couldn’t even visit them on their birthdays and holidays. Each morning my early morning prayer always ended with “Father God, help me to be a good son.” Each year passed by with hope for a better next year. I thought I had opportunities to be good since my maternal grandmother was still alive, but I lost that opportunity. You don’t always have that opportunity. I encourage you to go see your living parents today.